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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평론가의 공허한 이중성(二重性)
작성 : praisenews   2013-09-30 16:01    조회 : 672    추천 : 0   
사이비 평론가의 공허한 이중성(二重性)
글/김규현(本誌 주필, 총회신대원 교수, 前 한국음악평론가협회 회장)

문제점
외국에 비해 국내 음악평론계는 음악계로부터 불신과 괴리현상이 다분히 많다. 평론가들의 자질이 문제시되고 평론 의식마저 상실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평 기능이 자리 매김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50여년에 가깝게 비평활동이라는 것이 고작 연주회평 내지 주례사 같은 인상 비평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정확한 대안이나 방향제시를 해주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 비평계의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우리나라 음악평론가들 대부분이 정식으로 평론 교육을 받고 평론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전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일부 몇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평론가로서보다는 그냥 이론가로 머물고 있고 평론 활동을 접어두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오늘날의 평론가들은 자생적으로 된 비평가들이 대부분이다. 6·70년대는 주로 일간지 지면을 통해서 평론활동을 해왔으나 90년대 들어와서는 일간지 문화부 음악 담당기자들이 리뷰라는 이름을 내세워 쓰면서 독식하고 있다. 이래서 평론가들의 활동무대는 음악 잡지뿐이다. 문제는 음악 잡지들이 검증 없이 무작위로 평론가를 양산하고 있는데 있다. 음악인들과의 불신과 괴리현상을 음악 잡지들이 조장하고 있기도 하다. 잡지사가 가지는 상업주의적인 사고가 비평 기능을 상실케 하고 있는 것을 비평가들은 경계해야만 한다. 이런 것을 볼 때 언론의 무책임한 행태를 읽을 수 있고 음악계의 협조적 유해기능까지 하고 있다. 물론 일부 음악 잡지는 유능한 젊은 평론가를 발굴해서 신선한 면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다. 평론가들은 이런 유해잡지에 휩쓸려 자신들의 위상을 상실하는 일을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벙어리 음악평론가와 사이비평론가
국내 평론가들은 대부분 음악 잡지를 통해서 평론 활동을 한다. 음악 잡지를 통해서 평론 활동을 못하는 평론가는 음악해설자로 활동한다. 이것은 진정한 평론가는 아니다. 평론가는 시평과 평문으로 말한다. 또 다른 평론가는 평문을 쓰지 않고 소논문이나 작품분석 등을 쓰고 평론가 행각을 하고 있다. 실효성과 현실성이 별로 없는 평론가다. 이들은 이른바 벙어리 평론가이다. 평론 활동은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자신들의 문제이겠지만 연주회도 가지 않고 제대로 된 평문조차 쓰지 않는 사람은 우리가 말하는 평론가는 아니다. 그리고 평문 몇 편 쓴 것을 가지고 평론가 행세를 하는 사람도 진정한 평론가는 아니다. 적어도 평론가라 하면 전반적인 음악이론을 섭렵했어야만 하고 그 분야에 대한 방대한 지식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그리고 자매 예술에 대한 지식 기반도 갖고 있으면서 지속적인 평문을 쓰는 사람이다. 평론가는 바른 정신과 의식 그리고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이 평론가인데 글재주가 좀 있고 음악을 들을 줄 안다고 해서 평론가라고 자칭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음악계에서 사라져야 할 평론가들이 음악가를 선정해서 음악 평론상을 주고 있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런 사이비평론가들로부터 상을 받는 음악인들도 딱하다. 이제 한 세기가 바뀐 새로운 천년시대에는 정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일부 사이비 음악 평론가들의 질 낮은 행태를 보고 몇 가지 이들의 공허한 이중성을 지적하겠다. 첫째는 평론가로서의 저질 문제다. 자질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들의 평문은 일관성이 없고 체계가 없다. 두 번째는 상업주의적인 사고에 춤추는 비양심적인 작태이다. 평문을 매매하고 음악가들에게 손을 내민다. 사이비 평론가일수록 자신의 장점만을 내세우고 권위의식이 강하다. 평문은 순수해야 하고 정직하게 쓰여 졌을 때 그 의미와 가치가 큰 것이다.

평론계는 반성하고 음악인들은 정확한 식별을 하라
국내 음악 평론가들의 평문의 문제는 전문성이 결여된 점이다. 무슨 내용인지 초점이 없다. 체계가 없고 평문의 조건을 갖추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이비 평론가의 공허한 이중성은 자기기만과 모순의 행태의 속성이다. 논리와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어 내용이 공허하다. 비평의식까지 죽었다. 금전에 아부하고 평가대상에게 무릎을 꿇는 수모까지 스스로 자처한다. 곡학아세(曲學阿世)짓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이비 평론가의 전형이다. 평가 작품이나 연주회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없으면서 평문을 쓰는 사이비 평론가들도 수두룩한 세상이 작금이다. 평론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여러 음악 잡지를 통해서 젊은 평론가들이 꽤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제는 질과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이다. 기성 음악 평론가들의 방법이나 수준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고도의 테크닉과 최고 학문을 배우고 외국에서 귀국한 젊은 음악인들의 수준을 평문이 뛰어 넘지 못하고 있다. 비평논리도 별로 없어 보인다. 너무 구세대적인 평론으로만 보인다. 사이비 평론가의 공허한 이중성도 보이는 젊은 평론가도 있다.
21세기는 음악인들과 평론가가 함께 공존해야 발전할 수 있다. 물론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그렇지만 요즘은 공존만이 존재했지 불신과 괴리를 깨부수지 못했다. 안타까운 것은 일간지 신문의 문화부 담당 기자들이 리뷰(review)를 통해서 프로 음악가들을 평가라는 이름으로 재단하고 있는 점이다. 도대체 이런 모순이 일어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런 기현상은 소위 평론가들이 저질평문 때문에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가들의 충실한 충견 노릇이나 하고 주례사 같은 평문으로 하수인 짓을 한 평론가들의 자업자득이다. 평론가들에게 반성이 요구된다. 평론가는 양심 있는 정론의 평문을 써서 말해야만 한다. 평문도 안 쓰면서 평론가 행각을 하는 것은 평론가가 아니다. 사이비 평론가 행태는 평문과 시평 등을 보면 인식할 수 있다. 전문성이 결여됐고 평문이 곡학아세하다. 그리고 정확한 평가기준이 결여되어 있고 공허하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소위 평론가란 이름으로 전문음악가들이 이런 사이비로부터 저질평가를 받아야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음악가들이 확실히 인식해야 할 것은 저질사이비평론가를 정확히 식별하는 일이다. 이제라도 평론가들의 자각과 책임의식 그리고 사명의식이 존재한 정실비평이 필요한 때가 작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