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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결론
사회음악에 끼친 영향
개화기 학교음악과 사회음악에 ...
교회에서의 찬송가 수용
개화기 찬송가의 수용 과정
찬송가의 유입 및 수용 과정
개신교 찬송가의 유입 과정
개화기 30년간 개신교 찬송가...
사회음악에 끼친 영향
작성 : praisenews   2013-05-10 17:41    조회 : 1009    추천 : 0   

2. 사회음악에 끼친 영향

 

(1) 사회음악으로서의 창가와 그 개념의 변화

사전적 의미로 창가는 갑오경장(1894)이후 근대적인 각성과 조국의 자주독립에 대한 서양식 창가조로 읊은 시가(詩歌) 형식이다. 좁은 의미로는 개화사상을 담은 가사에 서양식 악곡을 붙인 노래를 뜻하며, 넓은 의미로는 신체시(新體詩)를 제외한 그 이전의 개화기 시가를 총칭한다라는 기술에서 알 수 있듯이 개화기 서양식 창가조또는 서양식 악곡이라 함은 찬송가 또는 찬송가류를 말하고 있음을 이미 앞서 밝힌 바 있다. 창가는 개화기에 우리 국민들이 가장 즐겨 부른 대중적 음악으로서 개화기를 대표하는 음악이었다. 따라서 개화기 사회를 대표하는 음악이 바로 창가라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개화기 찬송가가 창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앞장에서 살펴 볼 때 창가"는 그 의미하는 바가 시기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1885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기독교 교육기관인 학당의 수업 시간의 한 명칭으로 창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설립 당시의 학당은 오늘날과 같이 확고한 교육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교과목이란 명칭 보다는 수업시간이란 명칭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때의 수업은 한국 교사가 전무하고 오로지 선교사의 수급에 따라, 또는 선교사의 이동에 따라 그때그때의 수업 시간의 명칭이나 내용이 유동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선교사가 확보된 학당에서는 교육과정이 정해지고 그 교육과정 속에 창가라는 과목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의 창가시간은 찬송가 부르는 시간으로서 교재로는 찬송가가 사용되었다. 따라서 여러 기록을 고찰하여 볼 때 개화 초기 기독교 교육기관에서 사용되던 창가라는 과목은 단순히 찬송가를 배우는 시간 혹은 찬송가를 부르는 시간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이때의 창가는 곧 찬송가 부르기를 뜻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러나 기독교 학교이외에 공립학교와 기타 여러 사립학교가 설립되자 1906년에 <보통학교령 시행규칙>이 발표되면서 창가라는 과목이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교육과정이 국가 기관에 의하여 통제 받기에 이르렀다. 이후 1910년에 중앙정부 주관으로 처음으로 교과서에 해당되는보통교육창가집이 발간되면서 수업시간에 배워야 할 학습용 창가들이 정해졌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불러야 할 노래들이 제공되었기 때문에 단지 부르기에서 불러야 할 노래로 교육의 초점이 바뀌어졌다고 본다. 그러므로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는 공히 창가시간에 찬송가와 같은 사설 노래책의 사용을 금지하고 학습교재용 창가만을 다루도록 하였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학교 창가와 유사한 각계각층의 성인들이 부르는 세속창가가 전국에 확산되었다.

이와 같이 창가가 처음 쓰일 때는 노래 부르기를 뜻하였으나 차츰 부르는 노래또는 불러야 할 노래로 그 의미하는 바가 바뀌어졌다고 본다. 이와 같이 창가의 개념이 두 가지 측면을 내포하고 있음을 국어사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창가(唱歌)란 곡조에 맞추어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 라고 국어학자 이희승은 창가를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창가는 노래 부르기부르는 노래의 두 가지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창가는 개화 초기에 노래보다는 부르기라는 의미로 먼저 사용되었으며 개화 후기에는 학습창가와 세속창가에 속하는 노래들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 것으로 본다.

 

(2) 찬송가와 창가의 밀접한 관계

1885년 이후 미국의 선교사들이 가져온 개신교의 찬송가로부터 서양음악이 시작된 것이라고 앞에서 밝힌 바 있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서양 찬송가를 가르치면서 음악교육이 시작되었으며 그 찬송가는 교회가 아닌 학교에서 먼저 학습 자료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찬송가 부르는 수업을 창가시간이라고 하여 찬송가 부르기 즉, 찬송가 가창에 중점을 두었다. 때문에 기독교 학교에서 창가 시간이라 하면 찬송가 부르는 시간으로 알려졌다. 그런 후에 기독교학교에서 교사로서의 선교사들이 확보되고 교육과정이 정해진 한동안 창가란 교과목에서 혹은 몇몇 학교의 음악시간에 여전히 음악교재로서의 찬송가를 가르쳤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찬송가이외에 별다른 음악교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찬송가는 개화 초기 기독교학교의 음악수업의 학습 자료이며 음악교재로서 창가수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890년대 이후부터 수많은 창가와 창가집이 등장하면서 노래 부르기에서 부르는 노래로 창가의 의미가 다소 변화된 것을 앞에서 기술 한 바 있다. 이때의 창가는 기존의 찬송가 곡조에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노래이거나 또는 찬송가와 같은 서양 음계로 구성된 악곡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부르는 노래를 뜻하고 있다. 그러니까 찬송가는 종교적 목적에 의한 종교적 가사를 토대로 만들어진 반면에 노래로서의 초기 창가는 종교적 목적이 아닌 세속적 가사를 토대로 찬송가식의 서양음계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노래이다. 다시 말해서 초기의 창가는 대부분 찬송가의 선율을 차용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는 찬송가와 같지만, 가사는 새롭고 세속적인 내용으로 만들어져 찬송가가 아닌 계몽가나 애국가로 되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찬송가 79장의 선율에 고종 황제의 탄신을 맞아 축하하는 가사를 붙여 <황제탄신경축가> 또는 애국가라는 제목으로 신도들이 새문안 교회에서 189699일에 불렀다고 하여 한국 창가 제1호라는 별칭이 붙었다(악보3).

(악보 3: 찬송가 79장 선율을 차용한 황제탄신 경축가 인 애국가”)

위의 악보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사만 다를 뿐 악곡은 찬송가 그대로이다. 이와 같이 찬송가와 초기 창가는 가사가 다를 뿐 악곡의 구성 요소나 형태가 비슷하고 가사의 운율도 44, 33, 34, 등과 같이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므로 찬송가나 창가가 모두 서양음악의 범주에 들어가며 악곡의 형태나 가사의 형태로 보아 찬송가와 창가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분명히 찬송가는 창가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음악적으로 찬송가와 흡사하기 때문에 창가는 찬송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밖에 찬송가는 생활표현의 한 수단이 되어 예배당 내에서 머물지 않고 예배당 밖으로 확산되어 창가의 발전을 더욱 가속시켰을 뿐만 아니라 계몽사상 및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창가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볼 때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찬송가와 창가는 서롤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직접적 영향

 

개화기 개신교의 찬송가는 순수한 종교적 목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속적인 생활 내용을 도입하여 창가로 발전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한국인의 생활표형을 찬송가라는 새로운 도구로 노래했던 것이다. 이것은 찬송가가 예배용으로 또는 학교 음악 수업의 교재용으로 폭넓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예배의식이외에 기숙사, 운동장, 동네 어린이 놀이터 등 다양한 장소에서 불려 졌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찬송가 곡조에 새로운 세속가사를 붙이어 부르거나, 또는 서양 찬송가와 비슷한 악곡을 새롭게 작곡하고 여기에 세속적인 가사를 붙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소위 창가라는 새로운 노래로 발전하게 되었다. 새로운 노래라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찬송가의 선율을 차용하여 당시의 한국 정서를 나타내는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노래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창가의 음악적 형식은 찬송가 곡조 그대로 이거나 찬송가 선율을 차용하다가 차츰 찬송가와 유사한 서양식 선율을 작곡하여 창가의 선율로 쓰였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의 제1호 창가는 현재의 찬송가 79장의 선율에 고종 황제의 탄신을 맞아 축하하는 가사를 붙인 <황제탄신경축가>를 시작으로 이와 유사한 찬송가류 창가들이 등장하였다. “찬송가류라 함은 여전히 음악적으로는 찬송가 형식을 벗어나 못하고 가사만 바꾼 창가를 의미한다. 특히, 창가는 찬송가와 같이 악절 나누기(4개 혹은 6개의 작은악절 로 구성), 4/4, 혹은 3/4박의 단순한 리듬, 운율의 형식, 등등 여러 부분에서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찬송가와 창가의 유사점은 가사의 운율에서도 상당부분 유사점이 많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찬송가에서 많이 사용된 44, 33, 34, 335조의 운율이 창가에서도 아주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896411일 독립신문에 게재된 최초의 개화시라고 알려진 최돈셩의 <자주독립가> 또는 애국가의 가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대죠션국 건양원년 쥬독닙깃버

님 군께 충셩고 정부르보호

나라도울 성각으로 시종여일동심

징을각기 흥랴면 나라몬져보젼

 

그밖에 개화기에 많이 불렸던 작자 미상의 다른 애국가의 가사를 살펴보면 역시 44조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충군세 분골고 쇄신토록

나라위죽어보세 야에야

쥬독립 분명다 아세아에 대죠션이

 

위의 두 창가에서 보듯이 모두 44조로 되어있다. 이와 같이 개화기에 등장하는 애국가, 독립가, 행진가, 계몽가, 등의 국민들이 즐겨 부르는 창가들은 찬송가의 운율과 같거나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화기에 등장한 성인들의 창가 곡 즉, 애국가, 계몽가, 독립군가, 연가,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세속창가 또는 일반 창가들은 찬송가의 선율이나 가사에서 매우 유사한 점 또는 공통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개화기 창가는 찬송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4) 간접적인 영향

1910년대까지 창가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최고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개화기 창가의 가장 강한 속성인 음악적 단순성과 애국 또는 애족이라는 국민주의 혹은 민족주의라는 한계에 이르렀을 때 다행히 국민들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예술적 욕구와 교육적 욕구가 창가속에 표출하기 시작하여 또 다른 음악적 영역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찬송가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세속 창가곡 즉, 애국가, 계몽가, 군가, 독립군가, 연가, 등의 형태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창가는 향후 여러 음악적 영역으로 분화 되었다.

<카추사>, <장한몽가>, 그리고 <낙화유수>와 같이 남녀 간의 사랑이나 인생에 대한 허무를 담은 창가는 유행창가와 유행가, 일반 가요 또는 대중가요라는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편 예술적으로 순화되고 서정적인 시를 담은 창가는 예술 가곡으로 발전되었으며, 어린의 동심을 담은 예술가곡은 동요로 발전되었다. 따라서 창가는 1920년대로 들어오면서 이전의 창가보다 음악적으로 더 세련된 유행가, 예술가곡, 그리고 동요로 각각 형태를 갖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