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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찬송가와 시제품 찬송가집의 문제점과 21세기 찬송가의 모델
작성 : praisenews   2013-05-20 18:55    조회 : 1384    추천 : 0   

현행찬송가와 시제품 찬송가집의 문제점과 21세기 찬송가의 모델
-통일찬송가와 찬송가공회의 시제품 찬송가집을 중심으로-

 

Ⅰ. 들어가는 말
Ⅱ. 문제점
 1) 통일찬송가집의 제반문제(1983년 刊)
 2) 한국찬송가공회의 찬송가 시제품(2001년 刊)
   (1) 작품평가와 문제점
   (2) 가사의 음악적 창작 문제점
   (3) 선곡의 제반 문제
Ⅲ. 나가는 말 (21세기 한국찬송가의 모델)

 

 * 21세기 교회음악연구협회와 한국교회음악 포럼이 공동주최한 ‘교회음악 심포지엄’
    주제 발표전문(2003년 8월 18일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관)

 

현행 찬송가와 시제품 찬송가집의 문제점과

21세기 찬송가의 모델

-통일 찬송가와 시제품 찬송가집을 중심으로-

 

 

. 들어가는 말

현행 통일찬송가와 21세기 찬송가 시제품을 분석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심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21세기 시대정신과 그 양상을 반영해서 만들었다는 시제품 찬송가(이후 시제품)은 문제투성이였고 내용을 저질 한국찬송가들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시제품은 약 70~80%를 통일 찬송가집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고 다량의 한국창작곡과 외국찬송가 수십 편을 추가로 담고 있다. 이 반면 교독문의 시편 증편은 긍정적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은 내용이 저하되어 있고 수록곡들이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리고 시제품은 통일 찬송가집 내용을 몇 편만을 삭제하고 그대로 담고 있어 새로운 찬송가집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시제품은 통일 찬송가집 내용을 거의 반 이상 담고 있기 때문에 시제품을 중심으로 하여 제반 문제제시를 하려고 한다. 먼저 통일 찬송가집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시제품의 문제점을 밝히겠다.

 

. 문제점

1.통일 찬송가집(1983년 발행)의 제반 문제

통일 찬송가는 대체로 내용 담기와 편집체제는 상당히 우수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약 5분의1 558곡 중 120여 곡이 국내 교회에서 외면당하고 안불리워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안불리는 찬송가들이 지면을 불필요하게 20여 년 간을 채우고 있었다. 말이 120여 곡이라고는 했지만 한국 교회가 안부르는 찬송가는 이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안불리워지는 곡들을 분석해보면 회중찬송가로서 작품성이나 완결성이 결여되어 있고 선율이 무미건조한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7, 12, 19, 51(2/2), 70,106(2/2), 117, 151(복합2부형식), 160, 272(작품성결여), 302(복합3부형식), 345(chorale), 381(작품성빈약), 428, 515, 546, 92장 등이 그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찬송가들은 시제품(찬송가집)에는 대부분 삭제되어서 다행이다. 통일 찬송가의 근본적인 문제는 선곡의 미숙에 있다. 그리고 가사번역의 미숙도 문제가 많다. 수십 년 전에 번역한 가사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부자연스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사번역은 예배학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고려했어야 됐는데 과거 잘못된 번역으로 말미암아 연주 시 내용을 곡해할 소지가 많다. 곡은 찬송가인데 번역은 복음송가(Gospel song)이나 복음찬송가(Gospel hymn)(권면이나 신앙간증의 내용)으로 해서 찬송가가 복음송가로 둔갑되는 현상이 상당히 많은 것도 문제다. 그리고 가사가 곡의 종지형태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안되어 있어 종지감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106장 첫째단(phrase 1)의 종지가 정격종지(Authentic cadence)인데 가사는 반종지(half cadence)형태인 로 되어 있다. 그밖에도 206, 263장 등을 들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번역가사가 선율리듬과 불일치되어 내용을 곡해하고 부르기 힘든 점이다. 200장만 보더라도 아주 심각하다. /♪♪♩♩/♪♪♩♩/인데 번역가사는 /의피로 이/룬 샘물참/”~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둘째단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크/신능력 다/”~로 불일치가 됐으니 가사전달이 될 수 없고 그 뜻도 알 수가 없다. 203, 233, 97, 304, 232, 91. 277, 288장 등도 마찬가지로 번역의 문제로 내용이 왜곡되고 음악적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다음은 곡(melody) 중복의 문제다. 심지어 한 곡에 다른 세 가사를 붙여서 수록된 찬송가도 있다. 433(눈을 들어~), 459(지금까지~), 28(복의 근원~)이 그것인데 이 세 가사 중에 28장만을 부를 뿐이다. 그 밖에 81장과 85장 그리고 38장이 그렇고, 61장과 94, 23장과 170, 32장과 39, 496장과 144, 127장과 245, 510장과 188, 536장과 503, 516장과 248장 등도 곡기 같고 가사만 다른 중복된 찬송가들이다. 이 반면에 113, 204(주 예수~)114장 그리고 459(지금까지~)460장은 가사는 같은데 곡이 다른 경우다. 여러 교단들이 참여해서 만들 찬송가집인 만큼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단이기주의 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찬송가집을 만들었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중복찬송가들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두세 개 찬송가 중에 오직 하나는 부르고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끝으로 음악적인 하자 몇 가지를 지적하겠다. 332장 맨 아랫단(phrase 4)내 모든 죄의 죄음(15마디)에 단10도가 소프라노와 알토사이에 벌어져 있다. 87장은 맨 하단(14마디)오신 주의 주음에 알토와 테너사이가 crossed voice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것은 합리적이지 못해서 수정해야 한다. 통일 찬송가집은 지적한 문제점 외에도 아쉬운 것이 많다. 빈약한 내용담기로 인해 교회행사의 필요조건을 충분히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내용 담기와 편집체계가 빈약한 점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20여년(1983~2003)이 넘도록 싫은 소리를 듣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것은 불행한 일이다.

 

2. 한국찬송가공회의 찬송가 시제품(2001년 발행)

시제품을 분석해보면 공회의 음악전문위원들의 저급한 아마추어리즘을 느낄 수 있다. 편집이 체계가 없고 혼란스럽게만 느끼게 한다. 예배학적인 면과 예배양식적인 면을 고려해서 보면 통일 찬송가집의 편집안배가 더 합리적인 면이 있다. 송영(Doxology)이 예배 전반부에 불리어지는 영광송(gloria)라면 통일찬송가같이 송영은 당연히 찬송가집의 맨 앞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시제품은 예배찬송가를 맨 앞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송영을 찬송가집 중간 전쯤 안배한 것은 논리에 맞지 않고 회중들에게 더 혼란만을 가중할 뿐이다. 시제품은 통일 찬송가집과는 달리 한국 찬송가를 다량으로 수록한 것은 긍정정인 면은 있으나 비 찬송가적인 졸작이 문제다. 다음 몇 가지 문제점을 확인하겠다. 첫째는 창작곡에 대한 평가다. 작품성과 완결성 그리고 종교성(기독교성)이 있느냐다. 두 번째는 가사의 음악적 창작을 제대로 했느냐다. 세 번째는 선곡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다.

1) 작품평가와 문제점

수록된 국내 찬송가들의 공통점은 6박자와 3박자를 사용한 한국적 창작접근이 반 이상이 유사한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찬송가들이 대부분 고만고만하고 획일화 됐다. 창의적인 곡은 일부 작곡가를 제외하고 찾아보기가 힘들다. 국내 곡들은 외국곡과 비교해 너무 상투적인 선율이 많고 음악적인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인 곡들이 대부분이다. 487(이영철 곡), 66(전희준 곡), 527(나인용 곡), 263(설삼용 곡), 285(신영순 곡), 617(나운영 곡), 533(정두영 곡) 등이 그것인데 부르기가 매우 괴롭다. 그리고 선율구조가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선율구조의 찬송가는 154(김정양 곡), 150(장순일 곡), 262(임순미 곡), 265(박재훈 곡), 395(이영수 곡), 343(김홍규 곡), 302(박정선 곡), 등이다. 이 곡들은 창의성이라든가 종교성이 결여됐고 찬송가로서 부적합한 곡들이다. 찬송가를 부르는 대상은 교회 회중들이기 때문에 곡이 편이성과 보편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흔해빠진 상투적인 기존 선율을 베낀듯한 유사한 곡쓰기를 한 많은 창작 찬송가들은 새로움을 거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la mi mi mi, sol mi mi mi, sol fa mi re do, do mi sol do si ra sol, sol ra do do re do la do, mi re do la 등이 그것들인데 귀가 따갑게 듣고 있는 선율들이다. 이런 문제를 시제품 찬송가집의 이쪽저쪽 찬송가에서 만나야 되니 부르는 회중들이 짜증만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내 작곡가들한테 8분의 6박자 신드롬(syndrome)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도대체 8분의 6박자가 아니면 한국적인 창작을 할 수 없단 말인가. 한국적인 표현접근은 국악의 원형을 지나치게 살려서 작곡했기 때문에 너무 유치해 보였다. 많은 여과를 거쳐 새로운 차원에서 창작접근을 했어야만 했다. 예를 들면 국악장단리듬을 그대로 쓰지 말고 더 여과해서 표현접근을 한다든가 한국성 음향접근에 더 비중을 둔다든가 등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다. 또한 4성작법(four part writing)의 미숙함도 문제다. 예를 들면 5(김두완 곡) 20마디에 tenorbass 사이 병행1도와 22마디의 3음 중복(TB사이), 182(김두완 곡) 16마디에 병행5(AT사이), 64(한정희 곡) 10마디에 병행 8(SB사이), 86(박정화 곡) 11마디에 증2도 진행(Alto), 237(작자미상) 6~7마디에 SB사이 병행8, 267(한태근 곡)3~4마디에 병행5(SB사이), 13~14마디에 증2도 진행(Alto), 275(김두완 곡) 6마디에 장11도와 10도 벌어짐(AT사이), 285(신영순 곡) 2~3마디에 병행8(ST사이), 2마디에 병행5(TB사이)등 부지기수인데 이런 하자품을 21세기 찬송가라고 수록한 것은 잘못이다. 물론 특수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쓸 수는 있다. 그러나 285(신영순 곡)은 나운영의 병행 4,5도 방식이나 Debussy의 병행법과 같이 논리체계가 없는 미숙한 작법만을 보여주고 있다. 616(외국곡) 14마디에 증2(Alto) 문제도 그렇다. 창작에 가장 비양심적인 것은 남의 작품을 표절한다든가 그대로 모방하는 일이라 하겠다. 모방이 창작의 기본단계에서는 필요하지만 기성작가들이 남의 작품모방을 하는 것은 진정한 작가라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작가가 남의 작품에 대한 지식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서 모방이나 표절을 할 수는 있으나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 창작곡들이 너무 모방식 창작이나 표절이 많고 심지어는 자신의 곡까지 표절시비를 안고 있는 작곡가도 있다. 626(이동일 곡)144(외국곡)과 매우 유사하고 표절시비까지 갈수 있는 곡이다. 492(김한준 곡)340(박재훈 곡)을 연상케 한다. 299(김정일 곡)393(하재은 곡) 그리고 288(김종덕 곡)등 세 곡은 매우 유사하고 299장과 288장은 부분동기선율(sol la do do)이 동일하다. 260(박정선 곡)485(죄짐 맡은 우리 구주)과 리듬패턴이 동일하고 선율이 좀 다를 뿐이다. 390(전정위 곡)의 동기선율은 370(이유선 곡)의 동기(motive)선율과 동일하고 385(죄짐 맡은 우리 구주)의 동기를 한 음만 빼고 그대로 표절하고 있다. 그리고 473(문성모 곡)도 표절시비가 될 수 있는 동기적 선율 구조가 세 곳이나 보인다. 더 심한 것은 자기 작품 닮은꼴을 붕어빵 찍듯이 작곡한 작곡가도 있다. 278(김국진 곡)365(김국진 곡)은 셋째단과 넷째단 선율과 박자, 조성, 리듬 등이 닮은꼴이고 동기도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365(김국진 곡)493(김국진 곡)도 표절시비가 나올 정도로 유사점이 많고 박자(8분의 6박자)도 같다. 위 세 곡은 모방이나 표절시비가 너무 많은 것을 안고 있는 쓸모없는 곡이다.

이런 찬송가들이 21세기 찬송가집에 채워졌으니 21세기 찬송가집의 새로운 이미지나 신선미는 상실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찬송가집을 만들지 못할망정 이런 문제 투성이인 찬송가들을 무분별한 선곡을 한 것을 보면 전문위원들이 한심해 보인다.

이밖에도 화성연결의 매끄럽지 못한 진행이라든가 가사와 리듬과의 일치성 그리고 가사의 명암처리 문제도 있다. 특히 가사와 리듬을 교려치 않고 음악적 창작접근만을 한다든가 조사(助詞)처리의 비상식적인 처리는 전문작곡가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저급이었다. 455(박재훈 곡) 14마디에 하오니”, “품안에”, “담대히등 조사를 고음(D2)처리 한 것이라든지 617(나운영 곡) 14마디에 가슴에”, “빛나는등 조사처리의 미숙이라든지 647(최종민 곡) 첫마디와 5마디에 의 고음(C2) 처리, 284(이한웅 곡) 14마디에 ”, “”, “등의 최고음(E2)처리, 그리고 19(이중화 곡) 11마디 하나님을”(F2)처리 등 수많은 곡들이 조사처리를 잘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가사의 종지형태와 곡의 종지형태가 일치 안 된 곡들이 많은 것도 문제다. 455(박재훈 곡), 283(이문승 곡), 548(주성희 곡), 302(박정선 곡), 356(오소운 곡), 285(신영순 곡), 11(김은석 곡), 182(김두완 곡) 등이 대표적인 곡들인데 이밖에도 수없이 문제가 많다. 물론 작사가들의 곡 종지 형태에 대한 무지로 인해 찬송시의 종지형태가 확실하지 않은 원인도 있지만 작곡자들의 창작 문제가 더 심각해 보였다. 이렇다보니 가사내용과 곡이 동상이몽 현상이 나타난 곡이 부지기수가 있다.

가사와 리듬이 불일치된 곡들은 345(김순세 곡), 372(나운영 곡), 380(김보훈 곡), 395(이영수 곡), 427(구두회 곡), 430(김두완 곡), 436(임석인 곡), 451(이성천 곡), 508(백태현 곡), 526(김영철 곡), 537(김홍규 곡) 등이다. 이곡들은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불일치된 곡들이라 몇 군데 손질하면 그런대로 쓸만한 곡도 있었다.

 

2) 가사(text)의 음악적 창작 문제점

이 문제는 가사 전달과 phrasing(악구법)과의 관계가 매우 깊다. 그래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잘못하면 음악적인 흐름이나 박자 개념도 전혀 달라진다. 통일 찬송가집은 물론 시제품의 곡들도 이 문제를 잘못 구분한 것이 비일비재하다. 366(조돈환 곡), 284(이한웅 곡), 326(류근면 곡), 511(백경환 곡), 492(김한준 곡), 525(한태근 곡) 등인데 모두 4분의 3박자의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 곡들이다. 상기 곡들은 가사로 보았을 때 갖춘마디로 시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지적한 곡들의 가사가 강박이 아닌 약박으로 시작할 때 강약법이나 가사 전달 등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시제품 307(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이유선 곡)은 음악적으로 볼 때 약박으로(못갖춘마디)시작해야 더 합리적이다. 가사가 강박을 요구하고 있어 가사내용의 흐름을 살려 주려고 작곡자는 갖춘마디로 시작하고 있다. 이래서 작곡을 잘못한 것이다.

 

3) 선곡의 제반 문제

앞에서 언급한 제반 문제들를 알 수 있듯이 시제품은 불량품 찬송가가 태반이다. 선곡이 되지 말아야 될 곡들이 부지기수로 수록되어 문제시 된다든지 수준 낮은 외국 축가(carol)나 격이 맞지 않은 행사용 노래들을 찬송가라고 집어넣은 일도 문제였다. 627(Angoni war song)같은 외국의 전쟁노래가 왜 들어가야 되고 -이곡은 부활절 찬송가로 되어 있다- 어둡고 애조 띤 16세기 프랑스 캐럴이 성탄절용 찬송가(597)로 추가되어 한국교인들이 기쁜 날에 슬픈 노래를 불러야 되는 모순을 초래케 하고 있다. 새로 추가된 외국 찬송가 -찬송가라기보다는 세속노래 같다- 들은 대체로 단조 곡들이 많고 4성부식 작법이 아니라 선율에 반주부를 추가한 곡들이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찬송가 체제와 맞지않아 바람직해 보이지 않다. 단조 곡들을 다수 수록한 것은 종교성을 고려한 것 같은데 기독교성이 단조에 더 많은 것으로 판단했다면 무지한 짓을 자행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에 새롭게 수록된 외국곡들은 찬송가들 중에 3류의 모습이었고 수록(선곡)하지 말아야 했다. 예를 들면 574, 572(이스라엘 민요), 563, 536, 528, 389, 237, 145(송영곡)등이 그것이다. 한심한 것은 과거 통일 찬송가집 출간시 삭제되었던 찬송가(183, 261/ 곽상수 곡) (모두 1967년 작)를 또 수록했다든가 통일찬송가집에도 문제됐던 중복찬송가의 문제가 시제품에도 무려 6곡이나 중복 수록한 것이다. 21세기 찬송가집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런 중복현상이 없기를 바랐을 것이다. 중복은 찬송가집의 다양성과 일관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들은 502장과 611, 69장과 179, 491장과 255, 477장과 485, 439장과 74, 그리고 95장과 73장 등이다. 21세기 찬송가집은 통일 찬송가집과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선곡작업을 했어야만 했는데 더 퇴보한 모습이 많다. 또한 메트로놈 숫자를 삭제한 것만 보아도 시제품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산물인가를 알 수가 있다. 21세기 찬송가집에 30~40년 전에 만든 낡은 성가합창곡들 김두완 작곡<어지신 목자>(1956년작)(430), 김보훈 작곡<주여 나의 생명>(1968년작)(380), 김영자 작곡<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 평화의 기도>(1937년작)(545), A.Adam 작곡<오 거룩한 밤>(576)-을 수록한 것은 격이 맞지 않았고 회중을 고려치 않은 무지한 선곡이다. 회중은 전문합창단이 아니다. 이미 이 4곡들은 일반 성가 합창곡집에 수록된 것을 새삼스럽게 찬송가집에 수록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물론 성가대를 위해서 수록했다든지 회중들이 애창하고 있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수록할 수는 있다. 그러나 회중들 일부를 제외하고는 음이 높고 난해함 때문에 부를 수가 없다. 찬송가집이 회중들의 찬송가임을 감안하면 넣지 말아야 했다.

21세기 찬송가집이 한국 찬송가의 정체성을 염두에 둔 편집과 내용담기라면 위에서 지적한 국적 불명의 4개합창곡은 부적절하다. 오히려 나운영 작곡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조성을 내려 선곡했더라면 더 좋을 성 싶었다. 그리고 이밖에도 찬송가 즉, 62, 65, 39, 55, 433, 281, 469, 409, 298, 245, 334, 494장 등도 문제다.

그리고 한 작곡자의 찬송가가 다량으로 수록된 것도 문제다. 많이 수록된 숫자순으로 나열해 보면 이렇다. 박재훈 11, 나운영 7, 김국진 5, 나인용 5, 곽상수 4, 구두회 4, 이동훈 4, 김두완 4, 장수철 3, 박정선 3, 김종덕 3, 김보훈 3곡 등이다. 도대체 21세기 찬송가집을 만들겠다는 생각인지 공회측근 작곡가들의 작곡집을 만든 것인지 한심하기만 하다. 다양한 작가의 우수한 찬송가를 수록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찬송가집이 일부 몇 사람 다량의 작곡가들의 찬송가들로 채우고 있으니 몇몇 작곡가들의 작곡집이 아닌가. 그렇다고 다량으로 수록된 작곡가의 찬송가가 모두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박재훈씨의 최근작인 618(2000년 작), 549(1993년 작), 455(1997년 작), 276(1997년 작), 265(2000년 작)등을 분석해 보면 과거 60년대 작품과는 상당히 수준이 떨어져 보이고 작품성이나 예술성이 빈약한 것이 투성이다. 심지어 그의 곡 549장의 부분 동기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331>의 주제 동기와 선율, 박자, 리듬 등이 똑같다.

박씨의 40년대에 쓴 찬송가 두 편(456장과 268)도 함께 실었는데 공회 사람들은 그렇게도 찬송가가 없어 박씨의 옛날 노래를 먼지 털어 실었는지 한심하기 까지 하다. 박씨의 찬송가만이 아니라 원로 작곡가들의 옛날 찬송가(?)들도 먼지 털어 실어 놓았는데 시대에 맞는 21세기 찬송가집을 만들겠다는 공회 사람들이 시대를 역행하는 짓이다. 새 부대는 새로운 것을 담았을 때 그 가치가 있는 법인데 시제품은 헌 것을 잔뜩 담고서 21세기 제품이라니 기가 찰 일이다. 시제품은 어떤 찬송가를 담아서 그야말로 현시대에 부응하는 21세기 찬송가집을 만들겠다는 공회 사람들의 고민이나 노력을 볼 수가 없다.

 

. 나가는 말 - 21세기 한국 찬송가의 모델

한국 찬송가의 정체성(identity)이나 정형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작곡가들이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연구와 노력을 해왔다. 특히 박재훈씨, 나운영씨, 그리고 이동훈씨 등은 그 유형을 현행 찬송가집에서 보여주기까지 했다. 예를 들면 박재훈씨의 <산마다 불이 탄다>(통일찬송가 311)<지금까지 지내온 것>(통일찬송가 460), 이동훈씨의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통일찬송가 461), 그리고 나운영씨의 <손들고 옵니다>(개편찬송가 298) 등이 그것인데 이들이 쓴 창작방법은 지금도 후배 작곡가들이 답습할 필요가 있다.

시제품에 수록된 한국적인 찬송가들은 이 작곡방법(5음계+기능화성+국악장단응용)을 사용해서 만들어져있다. 반세기가 넘게 한국적인 창작접근은 여러 방법으로 시도됐고 작품도 만들어져 왔다. 이 시점에서 한국찬송가의 정체성은 무엇이고 어떤 유형을 가져야 되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회중 찬송가는 회중이라는 표현의 제한성 때문에 창작의 제한을 받게 된다. 찬송시도 마찬가지다. 시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고 자유형식이면 찬송가 가사로서 적합하지 못하다. 찬송가란 양식과 형식은 수백 년간 불리어지면서 구체화됐고 예배음악으로서 양식화됐다. 문제는 어떤 유형이 한국찬송가의 모습이냐다. 필자는 위에서 언급한 세분 작곡가의 찬송가들이 한국 찬송가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자 한다.

21세기 한국 찬송가의 모델은 첫째는 곡과 동일하게 찬송시도 한국적인 정형시를 갖춘 가사에 의한 한국적 시상을 가진 찬송모습이다. 가사내용과 음악적 맛이 우리적이지 못하면 한국성 표현은 불가능하다. 가사와 곡이 코드가 맞아야 한국 찬송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국악원형의 표현양상이 여과된 동양적 sound의 찬송가 모습이다. 여과 없는 국악적 원형 표현은 천박하게 보이기 때문에 부적합하다. 세 번째는 국악장단의 리듬에 의한 선율과 현대화성을 응용한 동양풍의 찬송가 모습이다. 이것을 나운영씨가 여러 번 시도했고 학문적으로도 정리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보편성이 결여되어 사장된 감이 없지 않다. 네 번째는 한국적 표현성 + 현대성 + 보편성을 갖춘 현대 찬송가의 모습이다. 한국 회중들이 부르기는 힘들 수도 있으나 굳이 보편성을 강조한 것은 세계가 지구촌화된 작금에 새로운 찬송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종교성(기독교성)이 강한 한국 찬송가의 모습이다.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면 하나님을 연상하듯이 찬송가를 부르면 하나님의 영성을 깊이 느끼게 하는 한국찬송가의 모습이 그것이다.

문제는 세계의 기존찬송가 양식들을 섭렵하고 선배 세대가 해놓은 한국 찬송가의 정형을 어떻게 극복해서 한국찬송가의 정체성이 있는 21세기 한국찬송가의 모델을 만드느냐다. 이제 선배 작곡가들이 만들어 놓은 토대위에 정형화된 21세기의 한국찬송가를 만들어 가야한다. 21세기 한국찬송가 모델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보편성과 창의성 그리고 종교성이 창작에 전제된 회중을 위한 찬송가 창작을 해야 한다. 즉 서구의 기존찬송가 양식과 형식에 우리 신앙의 내용을 담아 용해해서 한국찬송가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일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