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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음악제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8-12-26 15:32
<이영진의 음악시평>

국제음악제, 무엇이 본질인가?

이 영 진 [음악평론가. 6인 비평가 그룹 간사]

1
세계 4대 겨울축제로 이름난 삿포로 · 하얼빈 · 퀘백 · 화천은 축제의 재질材質이 겨울이라는 동질성 갖고 있다. 그러나 추구하는 성격과 모티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축제의 오리지낼러티는 확연하게 색깔을 달리한다. 어언 70년 역사의 삿포로 눈 축제는, 눈(Snow. 雪) 이라는 소재가 핵심 모티프다. 그래서 영문 타이틀도『Sapporo Snow Festival』이다. 1950년 삿포로의 중·고등학생이 여섯 개의 눈 조각을 동네 공원에 만든 것을 계기로 시작되어 눈싸움, 눈 조각전 등으로 발전하며 70년의 역사를 쌓아 올린 세계적 축제다. 하얼빈의 빙등제는 매년 1월부터 한 달간 열리는 얼음 축제다. 단순한 얼음이 아닌 얼음과 눈으로 조형물을 만들고 불빛을 등화燈火시켜 형형색색의 얼음조각을 연출한다. 그래서 영문 표기도『Ice & Snow Sculpture Festival』이다. 얼음과 눈의 조각 축제이다. 어떤 의미로는 조각전에 가깝다.
캐나타 퀘백의 겨울 축제는 프랑스어로『Carnaval de quebec』이다. 겨울을 상징하는 어떤 문구도 없다. 얼음, 눈, 산천어 따위로 축제를 포장하지 않고 다분히 포괄적 축제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축제의 다양성과 즐길 거리로는 세계 4대 겨울축제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어떤 연유로 세계 4대 겨울축제 반열에 <화천 산천어 축제>가 오르게 됐는지 명확치 않지만, 언급한 하얼빈이나 삿포로, 퀘백과는 동질성을 찾기 힘든 매우 독창적이고 특이한 형태의 축제다. 『Hwacheon Sancheoneo Ice Festival』이란 영문표기에 일단 ‘Ice’가 들어 있기에 겨울축제임을 표현하고 있지만, 산천어(山川漁. Sancheoneo)를 의미하는 물고기가 축제의 소재라는 점에서 다른 겨울축제와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공교롭게 이른바 국내 겨울축제로 대표되는 몇 곳의 지역축제 또한 모두 물고기가 모티프이다.「빙어축제」가 그렇고, 「송어축제」또한 그렇다. 그래서 연세대 중국연구원 김선자 전문연구원은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물고기를 소재로한 축제의 견해를 이렇게 밝힌바 있다.

“우리는 종종 인간을 중심에 놓고 자연계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잘못을 범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말을 할 줄 안다고 믿는 것은 그중 가장 큰 오해다. 사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뿐이지 새도 고래도 말을 한다. 자신들만의 언어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자연계의 모든 것은 침묵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화 속의 잉어와 달리 잡힌 물고기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그저 퍼덕거릴 뿐이다. 그래서 물고기들은 아무런 고통을 느낄 줄 모른다고 우리는 굳게 믿는다. 과연 그럴까.
이런 신화들을 읽다 보면 인위적으로 기른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를 얼음장 밑에 풀어 놓고 그것을 낚아 올리는 행위가 ‘놀이’이며 ‘축제’라고 불리는 것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버둥거리는 커다란 물고기를 입안에 반쯤 밀어 넣고 포즈를 취하는 외국인의 모습도 뉴스 화면에는 자주 보인다. 누가 통계를 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 4대 겨울축제’라는 타이틀과 함께 등장하는 그런 장면은 그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제가 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겨울축제들 중에 수백만 마리의 물고기를 인위적으로 풀어 놓고 잡게 하는 그런 축제는 없는 듯하다.
물론 우리는 소, 돼지, 닭도 먹고 물고기도 먹는다. 인간이 잡식성이니 뭐든지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화 속의 사람들이 그러했듯 우리의 먹을거리가 돼 주는 생명체들에게 감사해하는 마음과 함께 그들의 고통을 줄여 주는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축제’를 만들어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주최 측의 간절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이 왜 하필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잡는 ‘놀이’여야 했는지, 이래저래 묵직한 마음이다.“














<이영진의 음악시평>

국제음악제, 무엇이 본질인가?

이 영 진 [음악평론가. 6인 비평가 그룹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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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 전문연구위원의 축제에 대한 단편斷片은, 큰 의미로는 축제의 본질에 대한 방향을 언급한 것이다. 본디 축제는 그 기원이 종교적이지만 세월을 거듭하면서 신과 사람의 관계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그리고 사회적·문화적 단계로 확대 생산되면서 다종다양한 형태로 분화·발전해 왔다. 따라서 부활절 축제나 성탄 축제 같은 종교적 축제를 떠나, 이미 축제의 세속화는 오늘 날 상업적 측면이 부각된 각종 스포츠 제전이 뿌리를 내리게 됐고, 순수를 표방하던 예술분야도 이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많은 형태의 예술축제를 양산하게 되었다.
유럽 3대 음악축제를 대표하는《잘츠브루크 페스티벌》이나,《애딘버러 국제 페스티벌》,《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이미, 그 지역의 주 수입원이 될 정도로 상업적 가치를 지닌 음악축제가 된지 오래다. 예단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음악제 역시 창설 당시 이런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고 출범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문화수준의 국제화와 시민의 문화 예술 수준 향상 따위를 표방하고 있지만, 내막으로는 수익 창출의 거대한 계획이 웅크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문화예술 행사가 효율적으로 기획되고 운영된다면, 분명 고부가 가치 사업으로 수익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이나 북미와 달리 아직 국내 클래식 시장 기반이 생각만큼 영역이 넓지 않다. 우선 주 수요층이 폭넓게 형성돼 있지 못하다. 오히려 유럽에 비해 노년층보다 젊은 여성층이 주 관객층이라는 점이 미래지향적이긴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리 맑지 못하다. 게다가 클래식 음악축제는 케이 팝이나 락 페스트벌 또는 재즈 축제와 달리 대중성과는 일단 거리가 멀다. 불특정 다수가 참여하기 어려운 축제이고, 소수 특정계층이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된다. 당연하지만,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선호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참가에 따른 비용 또한 적잖이 감수해야 한다. 이런 여러 요인들이 음악의 잠재적 상품가치를 화폐로 즉각 생산해내기 어렵다. 말하자면 자칫 흥행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고, 설령 수익을 창출한다 해도 사회적 여건이 성숙되고 클래식 음악 수요층이 일반화됐을 때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는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창설을 위해 초창기에 많은 부분을 투자했던 금호그룹 故 박성룡 회장처럼 기업 메세나 차원에서 직업 진두지휘하듯 관여한 경우나, 또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를 위해 설립된 대관령국제음악제처럼 자치단체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쏟아진다면 일정 부분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속성이다. 기업의 후원이 끊어지거나 정부 혹은 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중단되면 해당되는 음악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음악제를, 그것도 국제적이라는 명분을 갖고 굳이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음악제의 실상부터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