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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음악가 채동선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20-11-10 17:25
민족음악가 채동선 120주년 탄생 기념음악회

새로운 대중음악 탄생을 기대하며


이종구(한양대학교 명예교수)


글머리에
1960년대 초,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이야기이다. 교복을 차려입은 대학생이 선배에게 구타를 당했다. 이유는 민속악의 일종인 산조를 연주했다는 것이었다. 영산회상, 여민락 같은 정악을 배우는 대학생이, 저속한 민속악을 연주하다니 될 말이냐? 후배는 아무 말도 없이 당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같은 대학의 어느 교수님이 산조를 배우기 위해 기생을 가르치던 권번(券番)의 선생을 찾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수군댔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대학교 입학시험부터 민속악의 일종인 산조를 필수 지정곡으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가 국악이라 생각하는 음악 안에서도 이렇듯 민속악과 정악의 차이는 크다.
이런 상황은 마치 오늘날 트로트와 알앤비, 그리고 클래식과 현대음악이 소통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조해볼 만하다. 이들은 소통 정도가 아니라 아예 원수를 대하듯 외면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서 그 음악이 갖고 있는 이런저런 이론과 장점을 내세워 포장한다. 이런 이론은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직업음악가들에 의해 더욱 필사적인 형태로 바뀌고 과장되기도 한다.

트로트 경쟁 시대
요즈음 각 방송국에서 경쟁하듯 트로트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어느 한 방송국에서 그동안 금기시하였던 트로트 프로그램을 내놓자 다른 방송국에서는 마치 ‘아차’ 싶게 프로그램을 앞다투어 제작했다. 그 결과, 불과 1년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불거져 나오게 되어 지금은 TV만 켜면 쉽사리 트로트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엔카(戀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트로트는 한때 그런 이유에서 방송금지까지 되었다. 트로트는 그 발생이 일본의 전통음악의 미야코부시와 요나누키 음계에 있다. 그런데 트로트 마니아들은 이런 음계의 차이는 별것이 아니고, 중요한 것이 창법이라고 주장한다. 떨고 꺾고 하는 것이 우리 전통음악의 창법을 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다. 국악의 음계는 평균율(平均率)이 아닌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으로 근본적으로 다르고, 각 지방마다 특정한 음을 떨고 꺾는 다른 특성이 있다. 무조건 꺾고 떤다고 해서 국악의 요소라 할 수 없고, 오음계를 썼다고 해서 한국 음악이라 할 수 없다. 오음계야말로 세계적인 음계다. 한국, 일본, 중국, 만주, 시베리아, 터키, 핀란드, 노르웨이, 아일랜드, 남북미 원주민 등에 오래전부터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던 음계이기 때문이다. 흑인들의 블루노트 음계보다 넓은 지역에서 더 넓은 지역에서 사용해 온 음계다.
단순히 음계와 창법만으로 트로트를 지지하기에 부족한 이유이다.

통절노래
노래에는 유절(有節)과 통절(通節)이 있다. 유절이란 1절, 2절 등으로 부르는 절이 있다는 뜻으로 하나의 간단한 선율을 여러 번 반복하여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우리나라식의 트로트 음악은 대부분 유절이다. 이 음악의 구성 원리는 2진법이다. 2진법이란 음표를 나눌 때 사용하는 온음표(1)와 2분음표, 4분음표, 8분음표, 16분음표 등으로 나누는 것처럼, 2마디의 주제와 4마디의 악절 그리고 8마디의 악구로 구성하여 확대하는 음악 형식의 형식이다.
이에 비하여 통절은 시의 형태에 따라 자유롭게 작곡한 음악이다. 절은 물론 음악적 상식인 2진법의 구성도 필요 없이 시의 정서에 따라 천태만상으로 변하는 음악이다. 대부분의 알앤비 음악은 이 유절 음악으로 되었다.
클래식 음악에서 통절 음악은 시인이 참여한다. 이들은 그 시가 노래로 작곡되리라 생각하기보다는 시 자체의 미적 감각을 추구한다. 대중음악의 가사는 전문적인 작사가나 싱어송라이터가 쓴다. 음악을 염두에 두고 가사를 쓰기 때문에 2진법 형태를 기본을 두고 이를 변형하는 음악을 따르는 것이다.
유절 노래는 유럽의 낭만파 음악과 관계가 있다. 낭만파 작곡가의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의 음악이 통절에서 빛나고 있다. 이들은 하이네, 샤미소, 뫼리케, 아이헨도르프, 괴테 등의 세기적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와 함께하고 있다.
낭만파 시대라 할 수 있는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100년 남짓한 세월에 유럽에는 통절 음악만 있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칸초네 나폴리타나로 대표되는 이탈리아의 노래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돌아오라 소렌토로>, <산타 루치아>, <그녀에게 내 말 전해주오>, <오! 솔레미오> 등 이 정열적인 노래들은 모두 유절이다. 이 음악은 모두 대중음악의 영역에 있다. 하지만 클래식 가수도 즐겨 부른다. 이 칸초네가 생겨났을 때에는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구분이 없었던 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샹송과 영국의 서정적인 노래들이 모두 이런 노래의 범주에 든다.
12~13세기부터 시작된 샹송과 칸초네의 긴 역사에서 이런 음악의 예를 다 든다는 것은 무리다. 근대에 들어서만 해도 이베트 길베르, 아리스티드 브뤼앙, 미스탕게트, 모리스 슈발리에 , 다미아, 조세핀 베이커, 에디뜨 피아프, 줄리에트 그레코 등 헤아릴 수없이 많은 가수가 있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대중음악이라는 영역이 생겨났다. 앞서 언급했던 칸초네와 샹송, 그리고 신흥국가 미국에서 발생한 재즈(Jazz)가 대중음악의 모체다. 노예해방 시기를 살다가 간 포스터가 미국식 민요를 개척하였고, 뒤이어 서부개척 시대와, 남북 전쟁 시기가 있게 된다. 이런 중에 노예해방을 맞은 흑인들은 그들의 자립심을 키우는 재즈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때 트로트도 함께 생겨났다. 미국의 흑인들은 남북전쟁이 끝나자 백인들이 버린 군악대(band)의 악기를 활용하여 오케스트라가 아닌 밴드를 만들었다. 여기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악기 혹은 살롱의 업라이트피아노 등 그들 주변에 있는 악기를 닥치는 대로 사용하여 격변하는 시대의 암울함을 달랬다. 20세기 초 단순한 블루스(Bluses)와 래그타임(Ragtime)이 이런 흑인 정서의 탈출구였는데 해방된 이들은 유랑(流浪) 길을 따라 캔자스 씨티와 뉴올리언스에 이르면서 딕시랜드라는 전통적 재즈를 성립하였다. 이것이 오늘의 미국 대중음악의 기틀이다.

가요와 가곡의 구분이 없던 시기
한국에 서양음악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20세기 초다. 오늘날과 같이 대중음악이나 클래식 음악을 나누는 특별한 구분이 없었다. 그래서 성악가인 윤심덕이 이바노비치 작곡인 <도나우강의 잔물결>을 번안하여 대중적 큰 인기를 끌었고, 홍난파의 노래를 대중음악 가수들이 불렀으며, <산장의 여인>으로 유명한 권혜경은 김성태의 <동심초>를 처음으로 부른 가수가 되기도 했다. 이른바 클래식이나 대중음악 또는 가곡과 가요 등의 용어나 형태가 없었던 시기였다.
이런 초창기 때에도 유절 노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채동선(1901~1953)의 예술가곡은 거의 슈베르트처럼 통절 가곡을 작곡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초기의 작곡가로 홍난파, 현제명과 함께 활동한 유명한 음악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예술 음악을 택하여 대중으로부터 멀어졌다. 일제의 감시 눈을 피하려 수유리에서 농사를 지으며 창씨개명도 하지 않고 살았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식량이나 물자의 배급 대상에서 제외되고, 자녀의 입학 거부, 공·사 기관에 채용 거부, 행정 기관에서 민원 사무 거부, 비국민·불령선인으로 사찰하는 등의 불이익을 당해도 그는 끄떡없이 이를 거부하였던 사람이었다.

민족음악가 채동선 탄생 120주년 기념음악회
세월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면서 이제는 케이팝(K-Pop)이 세계시장에 우뚝 서 있다. 케이팝은 유절 통절을 구분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한다. 이 기회에 100년 전의 채동선 음악을 케이팝으로 거듭난다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한 장이 마련될 것이다. 여기에는 전문적인 편곡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원래 시(詩)도 요지음 감각에 맞게 정비되고, 협주하는 악기도 전자악기와 샘플링 등이 동원되는 오늘날의 대중음악 형태를 따라야겠다. 여기에 채동선이 추구했던 통절 음악의 이념만 살아난다면 아주 어울리는 새로운 음악이 태어날 것이다.
2021년은 채동선 탄생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맞춰 (가칭) 민족음악회는 전라남도 벌교의 채동선음악당과 그 외 어느 한 곳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지금 확정된 참여 단체는 한국 남성합창단과 채동선 합창단이다. 여기에 바이올리니스트 채동선의 진수를 보여줄 현악사중주단과 마지막을 빛낼 케이팝 가수의 프로그램을 추가할 예정이다. 끊어질뻔했던 민족음악가 채동선 탄생 120주년 기념음악회가 성공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