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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음악사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8-10-08 06:28
세계 음악사(史)를 써갈 음악가는 없나
글/김규현(前 한국음악비평가협회 회장·작곡가)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세계음악사(-Grout&palisca 공저 A History of western music 8판 2010년 刊 와 Rosenstiel 편집의 schirmer history of music 등)들을 읽어보면 우리나라 음악가들을 전혀 만나 볼 수가 없다. 심지어 국내 이론가들이 펴낸 세계 음악사에도 국내 음악가들의 이름을 찾아 볼 수가 없다(국악계 제외). 단지 음악 사전류인 “Grove 음악사전” (1980판 vol. 20 p.606*)라든가 존 빈튼이 엮은 “현대음악사전”(p.831), “20세기 작곡가 가이드”(p.273), 그리고 “옥스퍼드 음악소사전”(p.807) 등에는 독일에 귀화한 한국계 독일 작곡가(Korean-German composer) 윤이상(1917-1995)만이 등재되어 있을 뿐이다(*등재된 페이지). 그러나 독일에서 출간된 “1945년 이후의 현대음악”(1997년 刊)이란 작곡가 사전에는 강석희(p.766,851), 백남준(p.807) 그리고 재독 작곡가 박영희(p.768, 858) 등이 등장한다. 또한 2000년대 초에 재판한 “新 Grove 음악사전”에는 국내 작곡가들이 여러 명 등재된 것을 볼 수가 있기는 하다. 그리고 미국에서 출간된 사전류인 “20세기 음악 길라잡이(p.83)”에는 정경화· 정명화· 정명훈 등 3남매의 이름과 소개가 짤막하게 게재된 것도 볼 수가 있다. 한국 양악사가 한 세기 반이 넘는 데도 불구하고 인물사전류에만 일부 음악가들이 등재된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지만 국내 음악가들의 음악사 등재 부재 현상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일이다. 오늘날같이 오직 연주나 작품 발표만으로 국내 음악가들의 기능이 되어서는 역사를 만들고 써갈 수가 없다. 세계 음악사를 써간다는 의미는 한국 음악을 세계화하고 국제화해서 세계인들과 세계 음악계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음악가들을 음악 역사의 인물로 만들어 기록에 남기는 것이다. 세계음악사에 등재된 음악가들 마냥 말이다. 유럽에 비해서 작은 나라인 남미의 브라질은 작곡가 빌라 로보스(1887-1959)가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아르헨티나는 새로운 탱고의 창시자인 피아졸라(1921-1992)를 낳아 역사의 한 획을 그었는데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보다 좋은 음악조건과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역사를 만들지 못하고 써가지도 못한 음악가들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음악과는 별개지만 노벨상만 보더라도 작은 나라(小國)인 룩셈부르크가 3명, 루마니아가 3명, 크로아티아는 2명, 리투아니아는 1명 등 수상자를 배출해냈다. 우리나라는 겨우 남북 평화 협정 노력으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일이 전부이다. 이웃 일본은 24명이나 배출했다. 오늘날은 어느 시대보다도 지구촌화됐고 정보기술(IT)이 보편화되어 있어 국제화 내지 세계화를 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음악사를 만들고 써가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최근에 세계적인 문학상(賞)인 부커만賞을 수상한 소설가 신경숙(55)의 “엄마를 부탁해”만 보더라도 전 세계 5,60여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였고 세계 문학사의 한 면을 써간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도 정보기술이 전제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음악가들도 얼마든지 역사를 만들고 써갈 수 있다. 일시적이긴 하나 보컬 그룹인 방탄소년단(BTS)의 한류현상만을 보더라도 정보 기술이 얼마나 큰 것인지 확인할 수가 있다. 이들이 빌보드 차트(Billboard chart)를 석권한 것이라든지 세계 대중음악사의 큰 획을 그어가며 역사를 써가고 있는 것도 정보기술의 덕이다. 변방의 일곱 명 소년들이 순수한 한국어만으로 이렇게 세계 대중음악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오늘날 많은 국내 음악가들은 (백건우, 작곡가 강석희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 반열에 서서 활동하고 있고 인정까지 받고 있다. 이제라도 국내 음악가들은 연주나 창작 발표에 만족하지 말고 세계 음악사를 만들고 써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저서(작품)를 내놓고 CD, DVD, LP 등 기록물들을 만들어 세계 음악계에 내놓고 알려야 역사를 만들 수 있고 써갈 수가 있다. 그 좋은 예가 지휘자 카라얀이 아닌가. 그의 수많은 기록물(CD, DVD, LP)들은 셀 수가 없다. 역사는 남이 써주는 것이지 내가 써가는 것이 아니라고 의타심을 갖고 있는 소극적인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비록 독일 작곡가가 되었지만 윤이상은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을 뛰며 작품 발표와 교육으로 역사를 만들고 쓰지 않았는가. 역사가 인물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1960년대 후반에 동베를린 간첩사건으로 세계적인 인물이 됐고 스스로 역사를 써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 음악 환경을 볼 때 역사쓰기는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요즘 세계 음악 현장에서 우뚝 서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음악가들(조수미, 정경화, 정명훈, 사라장, 박영희 등)를 본다든가 세계적인 음악 콩쿠르에 최고의 상을 걸머쥔 젊은 음악가들(조성진, 선우예권 등)을 보면 역사쓰기는 희망이 보인다. 문제는 단편적으로 음악가들 자신만을 홍보하거나 이름 석 자 알리는 데 그쳐서는 써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헝가리의 바르톡이나 독일의 슈톡하우젠, 미국의 번스타인과 존 케이지, 프랑스의 메시앙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카라얀 같은 인물들이 출현해 세계 음악사를 만들어가고 써가는 일을 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국내 음악가들은 이제라도 세계 음악사를 만들고 써가며 큰 획을 긋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은 21세기의 국내 음악가들에게 주어진 책무(責務)라고 할 수 있다. 음악 역사는 음악가들의 역사이고 음악가들이 직접 만들고 써가야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