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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합창경연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9-04-16 12:36
音┃樂┃時┃評


전국합창경연대회의 두 얼굴

이 영 진(음악평론가. 6인 비평가 그룹)

십 수 년 전 KBS 2 TV 예능 프로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에 출연진으로 등장한 사람들을 조련시켜 국민을 감동케 한 박칼린의 리더십이 한 동안 뜨겁게 회자됐던 적이 있었다. 당시 박칼린이 짧은 기간 리더십을 발휘하여 방송인 이경규를 비롯한 유명 연예인들을 조련시킨 장르는 다름 아닌 합창이었다. 이들「남자의 자격」합창단이 2010년 9월 3일 출연하여 국민적 감동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바로『제7회 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였다. 전국에서 모두 20개 합창단이 참가하여 실력을 가늠했고, 자웅을 겨룬 결과「남자의 자격」합창단은 장려상을 수상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인지하고 있거나 시청한 내용들이다. 그런데『전국합창경연대회』란 타이틀을 걸고 개최하는 국내의 합창대회는 십여 개 정도로 각자 조금씩 운영방식을 달리하며 매년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고 있다.『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도 그런 합창대회 가운데 하나로 제법 역사를 가진 자치단체 주최의 경연대회이다.
전국 규모의 합창대회 타이틀을 걸고 시작한 대회로는, 현재 강원도 춘천에서 개최되는『춘천전국합창경연대회』가 최고령 대회이다. 몇 해 전까지『태백전국합창경연대회』라는 명칭으로 열린 대회가 지금의『춘천전국합창경연대회』다. 이 경연대회가 금년에 36회 째니까 올해 16회 째 개최하는『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는 자식뻘쯤 되는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자식뻘쯤 되는 대회로는『거제전국합창경연대회』보다 한 두 해 늦게 출생한『휘센합창페스티벌』과『창원전국그랑프리합창경연대회』는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해 자취를 감추었고, 이들 대회보다 맏형 격인 대회는 청년기에 접어든『대통령상전국합창경연대회』와『제천의림전국합창경연대회』가 운영된다. 이 밖에 우후죽순으로 개최됐다가 슬그머니 문을 닫은 전국단위의 합창대회도 여럿 있는데 그런 대회를 제외하고 대회 운영상 불가피한 일로 지난 해 대회 개최가 무산된『제주국제합창제』와 벌써 오래 전에 대회 종목에서 합창대회를 삭제한『난파음악제 합창경연대회』, 20여 년 전에 자취를 감춘 국내 전국합창대회의 원조 격인『전국새마을어머니합창경연대회』등, 지난 세월 국내 대회와 현존하고 있는 대회의 현황은 대략 이 정도이다.

최고령의『춘천전국합창경연대회』는 서른여섯의 연륜 만큼 부침이 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초, 한국예총(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강원도지회(이하,강원도예총)의 특별장려부분 행사로 36년 전 창립된 이 대회는 시상금에 욕심이 나서라기보다 오히려 지휘자에게 주는 부상에 매력을 느껴 서였는지 유망한 합창단이 한동안 대거 참가했던 명성 높은 합창대회였다. 더욱이 시상 훈격이 대통령상이어서 당시로서는 많은 아마추어 합창단이 선망했던 대회였고, 대회를 주최했던 강원도예총에서는 대회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강원도 지역예선대회를 치러 엄선한 도 대표 합창단을 이 대회의 대표 자격으로 출전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의 제5공화국 출범 직후 대통령상이 남발된다는 이유에서 느닷없이 전국합창대회의 시상 훈격이 문화부장관상으로 격하되고, 그나마 지자체가 출범하고 나서는 아예 도지사상으로 곤두박질하였다. 그 후, 대전광역시에서 주최하는『대통령상전국합창경연대회』가 어떤 정치적 배려와 배경에 의해 대통령상을 주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끝내 강원도예총 주최의『춘천전국합창경연대회』는 대통령상의 수상 훈격을 복원하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상 훈격만 가지고 논하자면 언급했듯이 대전광역시에서 주최하는『대통령상전국합창경연대회』가 단연 가장 격이 높다. 과거 대통령상이었지만 지금은 국무총리상으로 한 단계 격하된『춘천전국합창경연대회』가 그 다음 격이고, 그 외는 대부분 광역자치단체장상이거나 그 지역 예술단체장상이 수여된다. 시상금은 현재 최저 5백 만 원에서 최고 3천 만 원까지 대상 또는 최고상을 수상한 합창단에게 주어진다. 경우에 따라서 지휘자를 우대하는 차원에서 별도의 지휘자상을 수여하고 있는 대회도 몇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자치단체에서는 지역의 반짝 경제효과를 노리고 참가합창단 유인책으로 참가비를 교통비조로 지원해 주는 대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참가비를 징수하는 대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국내에서 거행되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합창대회는 운영방법이며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참가자격, 지정곡, 자유곡의 제시, 심사위원 구성 등 여러 조건이 36년 전통의『춘천전국합창경연대회』운영 노하우를 텍스트로 삼고 있다.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전국합창경연대회의 내용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애당초 많은 무리가 있다. 시상 훈격이 높다고 반드시 권위 있는 대회도 아니고, 시상금이 많이 주어진다고 결코 화려한 대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36년 역사를 자랑하는 합창대회라도 대회운영의 질이 떨어지면 갓 태어난 신생 합창대회보다 훨씬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합창 대회든 참가하는 입장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 목적에서 동기유발이 된다. 한 가지 경우는 시상내용의 권위이고, 다른 하나는 시상금의 유혹이다. 시상금이 적어도 시상 훈격이 높으면 대회 참가자(단)의 기본적 욕구는 충족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지휘자의 과욕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면, 자기 자신이 대통령상을 수상한 합창단을 지휘한 지휘자라는 전력前歷에 집착하고자 함에서 기인한다. 시장상이나 도지사상을 수상한 경우보다 대통령상을 수상한 경우의 합창단을 지휘한 지휘자가 왠지 실력이 더 높아 보이기 마련이다. 이것은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시상 훈격에 집착한 지휘자나 합창단원들의 권위와 허영이다. 그런가 하면 시상금의 유혹은 허영심과 권위의 집착과는 달리 매우 현실적이다. 많은 시상금을 수령했다고 반드시 높은 실력을 지닌 합창단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합창단이 시상금을 많이 수령한 합창단을 부러워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입상한 합창단의 실력을 부정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시상금의 경우, 지휘자의 과욕과 합창단의 목표 지향적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합창단의 부족한 재정 현실에 대한 경연대회의 보상금이란 생각이 오히려 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국내 아마추어 합창 지휘자들이 이런 전국적 타이틀의 합창경연대회에 미혹되는 현상은 비단 언급한 두 가지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합창경연대회에 참가하므로 소속 합창단 운영의 목표의식을 고취하려는 명분을 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합창단의 커리어를 축적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회에 참가하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어떤 경우, 지휘자는 대회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단장이나 합창단원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어떤 명분으로 경연대회에 참가하든 문제는 참가의 중독성이다. 대회 참가에 중독이 된 경우는 시상금도 시상내용의 권위도 모두 포함할 뿐 아니라, 예외적 경우까지를 포함하여 거의 반복적이고 정례적으로 참가한다. 게다가 한 대회에만 참가하는 게 아니라, 마치 합창단의 존재 이유가 경연대회 참가에 있는듯 연중 전국 각지의 경연대회에 단골 고객처럼 등장한다. 게다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영업까지 하려고 덤벼드는 지휘자가 있다는 사실에 아연해 진다. 그 지휘자는 일종의 경연대회용 전문합창지휘자이다. 이들은 경연대회 입상에 목을 매고 있는 합창단을 대상으로 놀라운 지도력으로 단기간에 집중지도 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시킨다. 물론 능력 없는 지휘자의 경우는 불가능한 일이다. 전공도 했고, 또 나름대로 합창분야에서 주목받을 만한 잠재력을 인정받는 몇몇 지휘자들이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특정 합창단에 소속돼 있지 않고 철새처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 해 동안 두 세 개의 합창단을 전전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물론 적정 수준의 사례비가 뒤 따르게 된다. 일종의 사전 거래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난립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존하고 있는 십여 개의『전국합창경연대회』에 일부 합창단은 한 해에 사오 회 이상 참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이미 중독이다. 그러한 합창단은 과연 합창을 즐기려는 것인지 대회를 즐기려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데, 매우 특징적인 현상은 이런 합창단이 대도시 여성합창단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아주 드물게 남성합창단도 두세 팀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집요할 정도다. 해마다 합창단의 연간 목표가 경연대회 참가인 듯하다.
실로 그 합창단의 지휘자가 합창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점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줄잡아 열다섯 개 내외의 합창단이 대회참가에 이미 중독된 팀들이다. 이들은 어느 해엔 A지역에서 개최하는 대회에 참가했다가, 한두 달 후엔 B지역 대회에 고개를 내밀고, 서너 달 후엔 C지역 대회에 등장한다. 이른바『전국합창경연대회』의 고정 고객들이다. 이들 고정 고객들 가운데는 한 해에도 시상금으로만 수 천 만원을 챙기는 합창단도 더러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각 지역에서 개최되는 합창대회의 주최 기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비롯된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욱이 한심한 세태는 이렇게 참가하는 단골 출연 합창단들은 레퍼토리도 마저도 거의 동일하다. 어떤 여성합창단은 수년 동안 대회참가를 바꿔가며 같은 레퍼토리로 줄기차게 참가하여 상위 입상하기도 한다. 또 사례비에 집착한 일부 지휘자는 집중적으로 한 두곡을 연습시켜 그 합창곡에 관한한 거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고, 그 작품 해석의 전문가가 된다. 이렇듯 합창곡 선곡에도 오로지 경연대회를 목표로 몰입하여 아예 수년 동안 합창대회 참가 경연 곡만을 족집게 과외 하듯 선곡하여 연습하는 합창단도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대회에 참가하는 단골합창단의 경연곡이 어느 해엔 대여섯 합창단씩 중복돼서 연주하기도 한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합창대회에 단골로 참가하는 지휘자들의 선곡 감각이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1990년대엔 주로 황철익의「새 몽금포 타령̗」, 김동진의 「신 아라랑̗」, 박재훈의「정선아리랑」, 김희조의「새야새야 파랑새야」,「농부가」등 민요풍 합창이 경연대회 참가곡으로 대세를 이루다가, 2000년대 들어서 김청묵의「모란이 피기까지는」, 함태균의「가시리」, 박정선의「청산별곡」,「가시리」,이건용「메밀묵 사려」등 이른바 창작합창곡이 대회의 주요 레퍼토리를 형성하게 된다. 그런데 열거한 창작합창곡은 대부분 한국적 조성과 선율에 난이도 또한 높게 작곡되어 연주회용 레퍼토리로 사용되기보다는 주로 경연대회용으로 선곡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때부터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작곡가의 창작 합창곡이 연주회용과 경연대회용의 분할구도로 양분돼 버렸다.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으로 판가름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국내 창작 합창곡의 활로를 여는 중요한 계기가 된 긍정적 측면이 강하다. 그래서 향후 허걸재・박지훈・박정선・이건용・이현철・우효원・오종찬・이영조・이기경・조혜영 같은 걸출한 국내 합창 전문 작곡가 또는 합창단 전속작곡가의 시대를 여는 결정적 여건을 조성해 창작 합창곡의 전성시대를 열어 주었다.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비단 창작합창곡의 활로며 합창전문 작곡가의 활동 터전 등『전국합창경연대회』의 순기능과 음악적 결실이 분명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각에서는 반복적으로 대회에 출전하는 합창단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 습관적으로 합창경연대회에 참가하는 단원과 지휘자의 합창 음악의 진정성에 대해 갖는 회의懷疑와 우려함 때문일 것이다. 다른 뜻으로 말하자면, 과연 그 지휘자와 단원들은 진정 합창을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회참가에 합창의 가치를 두고 합창을 진정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그들은 아마추어니까. 그러나 바로 이것이 함정이다. 국내 아마추어합창단이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가 바로 프로페셔널리즘의 결핍이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어느 합창단도 그 함정에서 벗어나기에 자유롭지 못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국내 아마추어(본질적으로 비직업적)합창단 가운데 이런 함정에서 일찍이 벗어나 진정으로 합창을 사랑하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노래하는 합창 전사들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전 MBC합창단장 조우현이 지휘하는「마니아합창단」이며 이문기가 지휘하는「숭실OB남성합창단」이다. 물론 정상급 아마추어의 훌륭한 본보기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임명운의「아주여성합창단」과 종교적 목적으로 활동하지만 모범적 운영이 돋보이는 이원웅의「한국기독남성합창단」그리고 20년 넘게 창작합창곡 연주에 전념해 온「인칸토레스남성합창단」, 박신화의「이화챔버콰이어」, 유병무의「한국남성합창단」등, 오히려 순수하게 합창 연주에 집중해 온 합창단 수를 헤아리면 경연대회 단골 참가 합창단보다 많은 현실임에 위로가 된다.

물론 경연대회에 중독성을 갖고 참가한다고 해서 그 합창단을 음악적으로 폄훼하려는 의도는 갖고 있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원과 지휘자의 합창음악에 대한 바른 인식이다. 연주를 통해 진정한 합창음악의 가치를 찾는 길이 정도인데, 문제는 그 길이 언제나 좁다는 점이다. 좁을 뿐만 아니라 험난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일부 지휘자들이 쉽고 빠른 길을 택하여 질러가려고 한다. 그러니까 편법이 동원되고,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테크닉만 잔뜩 부풀려 놓으니까 진정한 인성人聲을 들을 수 없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엔 그저 훌륭하게 연마되고 가공된 합창 매커니즘만 있을 뿐이다. 언젠가 국내에서도 영혼을 울리는 사람들의 합창소리, 과거 러시아 <돈 코사크>의 가슴 울리는 합창소리를 듣게 되기를 진정으로 염원한다. 경연대회 참가가 합창의 목표가 아니라 합창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화음의 아름다운을 체감하며 음악미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합창음악의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 길이 멀고 험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