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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악축제 30년
기사작성 : 아브라함   2018-12-17 18:19
교향악 축제 30년.
유니버설리즘을 넘어 글로벌리즘으로
글/김규현(前 한국 음악비평가협회 회장·작곡가)

들어가는 말
한 나라의 문화가 발전하려면 전용 공연장이 여러 곳 있어야 가능할 수가 있다. 그동안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극장에 만족해야 했던 음악가들에게 88올림픽을 계기로 설립된 예술의 전당의 출현은 음악계나 음악가들에게 큰 축복이었다. 목말라 했던 전용 공연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만약 예술의 전당이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같이 음악계가 발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예술의 전당은 음악가들에게 중요한 활동무대이고 음악창조의 산실이자 중심체가 되어왔다. 예술의 전당 창설1주년(1989년) 기념을 계기로 만들어진 기획 프로그램 「교향악 축제(orchestral festival)」는 그동안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했고 국내 음악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교향악 축제(이하 축제)를 거쳐 간 오케스트라(시향), 지휘자와 협연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이들은 국내 외 음악계에서 중진으로 우뚝 서서 활동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음악은 음악 양식 중 가장 완벽한 형태이고 오페라 양식과 함께 규모가 가장 큰 음악 양식이다. 축제가 이런 대규모 음악의 축제라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이고 음악미학의 최고봉을 들을 수 있는 귀한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교향악 축제 30년史의 축제가 오늘날 우리나라 음악계에 준 영향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그동안의 결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21세기 축제의 미래상(像)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알아보았다.
축제의 意味性
축제의 의미성은 지역성을 초월해서 오케스트라들이 서로 화합하고 오케스트라 음악을 활성화 내지 대중화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오케스트라 음악을 자주 접하지 못하고 있는 일반 청중들에게 축제는 오아시스(oasis)였다. 축제가 이런 청중들에게 오케스트라 음악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향유할 수 있게끔 기회부여를 해준 것이다. 관현악의 보급과 활성화도 이렇게 해서 이루어졌다. 전국의 오케스트라(시향)들이 참여하지 않은 악단들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오케스트라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면에서도 축제의 의미성은 있다. 이를 통해서 자신들을 돌아보고 발전모색을 하게끔 동기부여를 해준 것도 축제만이 할수 있는 일이다. 축제가 우리나라 관현악계에 발전을 가져오게 하는 큰 역할을 한 것이라든지 관현악 마니아(maniac)들을 대거 증가시킨 점 등은 축제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수한 협연자들을 발굴해서 세웠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축제를 거쳐 간 젊은 협연자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축제의 진정한 의미는 청중들과의 소통(communication)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중들과의 소통이 결여되면 축제는 무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연주회의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쇤베르크(schoenberg 1874-1951)의 「구레의 노래」나 국내 창작곡들은 무미건조한 것이 많아 소통이 잘 안 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축제는 청중들을 배려한 작품을 연주해야 소통을 할 수 있다. 그동안 연주한 곡들을 비교분석해보면 청중들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진 좋은 걸작들이 많이 연주된 것을 볼 수가 있다. 신선미도 있고 음악 사조(思潮)도 읽을 수가 있었다. 바로크시대(1600-1750)부터 근·현대음악(1910-present)까지 4시대 음악의 명작들을 모두 들을 수 있는 음악제였다는 면에서도 축제의 의미는 다른 음악제와는 달리 커보였다. 축제 30년史의 의미성은 우리나라 관현악史의 큰 획을 그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내 오케스트라(시향) 발전의 산실이 되고 있다는 점에도 의미가 지대하다. 수십 번 축제에 참여해온 일부 악단들은 세계적인 연주력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런 결과를 축제가 낳게 한 것이다. 축제가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발전의 순기능이 되어 온 것은 21세기 축제의 희망을 보여준 것이고 지대한 의미성을 낳게 한 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축제의 結實
중앙무대에 집중된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축제로 말미암아 전국적으로 활성화됐고 지역 간의 오케스트라 수준 격차도 좁혀놓았다. 그리고 참여 오케스트라들의 발전을 가져왔고 연주곡 흐름의 큰 줄기를 형성하기도 했다. 독일의 고전 낭만 작품 연주부터 다국적 작곡가들의 작품연주 그리고 대편성의 말러(Mahler)교향곡 연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 양식을 들을 수 있는 축제였고 최근에 와서는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 연주가 주를 이루기도 했다. 전체 축제의 연주곡 흐름은 음악 사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늘날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면 축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을 현격히 볼 수가 있다. 연주곡이 그렇고 프로그램 포맷이 그렇다. 그것뿐만 아니라 국내 오케스트라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연주곡의 변화와 발전한 오케스트라 면모가 그것이다. 그리고 지휘자들과 협연자들의 세대교체는 물론 오케스트라들이 짊어지기까지 했다. 이렇다보니 신선하고 새로운 곡이 많이 연주됐다. 연주회마다 달랐지만 대부분 연주회들은 청중들로 차고 넘쳐났고 회를 거듭할수록 청중들은 날로 증가했다. 최근 축제에서는 표가 매진사태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축제의 가장 큰 기여 중 하나는 대중음악 인구를 오케스트라 음악 인구로 끌어온 일이다. 축제 초기에는 청중들이 대부분 재경 지역 주민들이었는데 최근에는 참여 악단과 상관없는 일반 마니아 청중들로 바뀌어가고 있다. 청중들의 증가는 축제가 살아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청중들 입에서 베토벤을 말하고 브람스를 말하고 차이콥스키를 말하는 것을 보면 축제가 교육적 시너지 효과가 상당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음악은 들음으로부터 교육이 시작된다. 축제는 그동안 훌륭한 교육의 장이었고 음악 체험의 장이 되었다. 다양한 오케스트라 음악의 미학도 음악의 연주 현장에서 감지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대체로 축제의 결실은 첫째 참여 오케스트라(시향)의 발전을 가져온 촉진제가 된 일이다. 그리고 지역 간의 수준차를 좁혀 평준화를 이룬 점이다. 참여 횟수가 더 많은 오케스트라들은 더 성숙한 면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는 고전에서 근·현대까지 다양한 사적(史的) 레퍼토리(Repertoire)를 낳은 일이다. 축제 초기에는 고전의 베토벤, 모차르트 음악이 주를 이루다가 중반기에는 낭만의 브람스, 멘델스존, 슈만 등의 작품이 많이 연주가 됐는가 하면 후반기는 말러 교향곡이나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등의 교향곡과 협주곡들이 주를 이루어 연주곡의 시대적 변화를 보였다. 이것은 참여 악단들의 정기 연주회의 주요 연주곡이 되고 있다. 세 번째는 축제를 통해서 오케스트라 음악의 활성화 내지 대중화를 이룩한 점이다. 난해한 말러 교향곡을 즐기고 있는 청중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고급음악(Classical music)의 대중화를 현장음악을 통해서 제대로 한 것이다. 네 번째는 음악문화 의식변화를 가져온 점이다. 소규모 앙상블 음악만을 듣던 청중들이 대형 음악의 맛을 알게 한 인지변화를 하게끔 한 것이다. 고급음악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 변화를 갖게 한 것이다. 다섯 번째는 국내 오케스트라(시향) 연주회의 흐름(Repertoire and program format)을 낳은 일이다. 연주곡은 물론 해석접근방식까지 그 영향이 미친 것을 볼 수가 있다. 축제의 프로그램 포맷은 오늘날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의 기준치가 되기도 했다. 4월만 되면 축제의 계절(orchestral season)을 인식케 한 것도 큰 결실이다. 4월이면 축제를 연상하게끔 됐다. 청중이 축제를 기다리고 축제가 청중을 기다리는 그런 축제가 된 것이다. 국내 오케스트라 발전의 모태(母胎)요 중심측이 되고 있는 축제는 관현악 인구의 자부심이고 자랑스러운 음악계라 할 수 있다. 축제 활성화를 통해서 우리나라가 세계의 오케스트라 중심 국가를 꿈꾸는 것이 헛된 일은 아닌 것 같다.
21세기 축제의 未來像
최근에 와서 축제를 거쳐 간 오케스트라들이 해외 초청 콘서트 투어(concert tour)를 하고 돌아온 오케스트라(시향)들이 여럿 있다. 서울시향, KBS향, 경기필, 코리안 심포니 등이 그 악단들이다. 이와 같이 21세기 글로벌시대의 축제는 국내를 초월해서 국제적인 축제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매년 오케스트라를 초청해 연주회를 열어주는 것 같은 인상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축제상(像)을 만들어 가야한다. 축제가 시대에 맞게 새로운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첫째, 오케스트라 선정 방식을 지역안배보다 연주력 중심의 선별을 해가는 일이다. 축제의 성패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력과 지휘자의 능력에 달려있다. 그래서 철저한 검증과 평가를 거쳐 선정해야 한다. 두 번째는 축제에 부합되는 프로그램 선정을 지휘자들의 임의성보다 주최측의 의도성을 더 중요시 해가는 일이다. 축제 1년 전에 참여 지휘자들과 과거에 연주된 연주곡들과 비교해서 미래지향적인 의도성 선곡을 해가는 일이 그것이다. 초청 악단들이 임의로 연주하는 곡만 가지고 축제를 연다면 참여 악단들의 정기 연주회같은 인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축제 프로그램은 주최 측의 의도가 분명해야 한다. 이럴 때 중복된 연주는 없을 것이다. 세 번째는 4월 한 달을 교향악 시즌(orchestral season)으로 제정해 오케스트라의 날로 해서 축제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전국 체전 마냥 전국의 악단들의 대축제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예술의 전당은 야외 음악당도 있으니까 밖으로 가져오는 축제방식도 좋을성싶다. 네 번째는 축제를 하나의 관광 상품 브랜드로 만들어 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음악제, 독일의 바이로이트 음악제, 그리고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 마냥 축제를 상품화해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축제 팜플랫은 영문과 병행해서 외국 청중들도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축제 때마다 외국 청중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프로그램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 읽을 수가 없다고 했다. 4월은 관광계절이라 축제를 여행사들과 연계해서 만들어간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연계해서 관광상품 브랜드를 만들어 간다면 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을 청중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의 명물인 음악분수대도 있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이다. 다섯 번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 음악제인 아창제(ARKO)와 연계해서 창작 오케스트라 작품을 발굴해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연주곡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러시아의 오케스트라들 같이 자국의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세계에 들고 다니며 연주할 수 있게끔 국가 기관인 예술의 전당이 앞장서서 축제를 통해 국내 창작곡 발굴 작업을 했으면 좋을성싶다. 작품 은행(The Bank of Compositions)도 만들어 참여 악단들에게 제공한다면 창작곡 연주의 새로운 길이 트일 것이다. 그리고 국내 창작곡의 세계화 내지 국제화의 문도 열리게 될 것이다. 축제 중반기에 한국 작곡가 협회와 연계해서 몇 년간 창작곡 연주를 했으나 창작곡들이 외국 곡들 보다는 재연의 가치성이 떨어진 작품들이 대부분이라 계속할 명분이 없어 중단한 것 같다. 오늘날 국내 창작곡들은 산더미같이 많다. 연주곡으로서도 재연의 가치성이 상당히 높은 작품들도 여럿 있다. 묻혀있는 좋은 작품들을 전문가를 통해서 발굴하면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축제가 창작음악으로 세계 음악사의 한 획을 긋는 일을 만들어갔으면 한다. 음악사는 작품과 작곡가의 기록인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여섯 번째는 축제의 정체성 수립을 해가는 일이다. 잘츠부르크 음악제나 바이로이트 음악제가 세계적인 음악제의 특성을 갖고 있듯이 축제도 나름대로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물론 유수 오케스트라(시향)들이 참여하는 관현악 축제가 특성이라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축제의 참모습은 참여 오케스트라의 수가 아니라 연주 내용과 프로그램 프레임워크(frame work)의 창의성 있는 유형에 있다고 하겠다. 축제 시종(始終)을 창의성 있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관현악 축제와 어울리는 특별한 시종을 만들어 연출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오프닝 콘서트를 큰 행사로 시작한다든가(테이프를 자르고 개막의 팡파레를 울리는 퍼포먼스 등) 연주회 전에 프린지(fringe)를 연다든가 등 축제 전 행사가 그것이다. 예술의 전당은 공간이 많아 얼마든지 개막 특별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폐막 연주회도 대형 축제답게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나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 또는 8번 ‘천인 교향곡’ 연주 등을 축제 폐막으로 연주한다면 축제의 완결성이 있어 좋을성싶다. 21세기 축제의 미래상은 대한민국의 대표성을 갖은 세계적인 관현악 대축제의 면모를 갖추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최고의 악단과 최고의 지휘자를 세워야 한다. 참여 악단 하나하나가 최고의 상품가치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충족되면 축제의 국제화나 청중들과의 소통문제도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것이다. 국제화는 축제가 반드시 해가야 될 미래 과제라고 할 수 있겠다. 홍보도 철저히 해서 국제적인 축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제는 외국 청중들도 찾아오는 축제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축제 30년은 잘츠부르크 음악제나 바이로이트 음악제 마냥 국제적인 축제로서의 변신을 해야 한다. 이것은 거절할 수 없는 현 시대의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나가는 말
교향악 축제는 다른 음악제와는 다르게 독특한 음악제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을 30년이나 열어왔다. 열어온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 관현악 史에 아니 세계 관현악 史에 큰 획을 그어 오기도 했다. 그동안 축제에 참여한 오케스트라만도 498악단이 되고 협연자들은 617명이나 된다. 그리고 지휘자들은 498명이 된다. 연주 작품은 총 1549곡이 연주됐거나 발표됐다. 창설 30년 이 되는 예술의 전당의 교향악 축제는 우리나라 음악계나 음악가들의 중심체가 되어왔다. 음악가들은 축제 참여하는 것을 소망하고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예술의 전당은 음악가들한테 신뢰도가 높고 안식처가 되어왔다. 축제는 오케스트라 음악의 한 흐름(practice of performance)을 낳기도 했다. 21세기 축제는 더 구체적이어야 하고 더 체계적이어야 하고 더 전문적인 측면 접근을 해서 만들어 가야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최 측의 분명한 축제의도를 보여 주어야 함이 그것이다. 악단 선정이라든가 선곡 기준 그리고 협연자들의 선별 등도 주최 측 의도에 부합되어야 한다. 점점 높아만 가는 청중들의 수준에 부응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도 그렇다. 21세기 미래의 축제는 최고의 악단에 최고의 음악(The best orchestra and the best music)을 들려주는 음악제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동안 축제는 상당히 많은 진화를 했고 변화를 했다. 청중들의 음악적 수준도 높였고 오케스트라 음악의 대중화도 이루었다. 그리고 침체된 국내 오케스트라(시향)의 눈을 뜨게 했고 악단들이 새롭게 체제 정비까지 하게 만들었다. 교향악 축제 50년史가 될 때는 우리나라가 오케스트라 나라가 되어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외국 나들이 콘서트 투어(concert tour)를 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축제는 우리나라의 음악문화 발전의 중심축 되어 왔다. 축제로 말미암아 국민들의 문화의식전환도 가져왔다. 고급 음악문화의 중요성을 심어준 것이다. 축제는 국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가고 있다. 4월이면 오케스트라 계절을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의 생명들이 얼굴을 드러내듯이 관현악 또한 청중들을 부르는 계절이 되어 왔다. 축제 30년史에 국내 오케스트라(시향)들은 성년이 됐고 해외 초청 나들이 연주까지 하는 악단들이 생겼다. 축제가 이런 현상을 낳게 한 것이다. 축제는 우리나라의 오케스트라 발전史의 중심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국내 청중들만을 위한 축제로 만족하지 말고 글로벌 시대의 축제답게 국제화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외국 유수의 악단들을 초청해 국제적인 축제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길림성 오케스트라(1995년 참여)와 홍콩 필하모니 오케스트라(2017년 참여), 연변가무단 교향악단(1998년 참여), 대만 국가 교향악단(2018년) 초청 연주회는 이런 면에서 신선해보였다. 외국 악단을 초빙하면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축제의 퀄리티(quality)가 높을 수가 있다. 외국악단 연주회를 자주 접하지 못한 일반 청중들에게는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서히 국제적인 축제로서 세계적인 음악제를 만들어 간다면 잘츠부르크나 바이로이트 음악제와 같이 세계적인 국제적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국내 오케스트라(시향)들은 대부분 세계적인 연주력이나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국제화를 하면 가능성이 많다. 명품 브랜드로서의 축제도 만들 수가 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국제적인 마인드도 필요하다. 요즘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가보면 어느 악단이든지 많은 청중들로 인산인해다. 축제가 낳은 결실이다. 청중들의 욕구를 채워줄 요건은 최고의 음악과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세우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축제의 국제화도 최고의 악단으로 만들어 가야 성공할 수가 있다. 축제를 오케스트라들의 연주회만으로 만족해서는 21세기 청중들은 감동시킬 수가 없다. 축제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래서 축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을 살려가야 한다. 바그너의 오페라만 공연하는 바이로이트 음악제같이 말이다. 이렇게 될 때 축제의 정체성 확립은 이루어 질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축제는 최고의 음악으로 청중들을 감동주고 소통하는 열린 축제가 되어야 한다. 참여하는 모든 오케스트라가 이것을 할 수 있는 악단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오케스트라가 최고의 연주력을 갖고 있는 최고의 악단만의 축제가 되어야 함이 그것이다. 축제의 미래상은 세계를 향한 국제화와 정체성 수립된 모습이다. 그리고 축제 30년史는 유니버설리즘(universalism)을 뛰어넘어 글로벌리즘(Globalism)을 추구해야 될 것이고 우리나라의 대표성을 갖은 세계적인 관현악 축제로서의 모습을 갖추어가야 될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축제를 양성화해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음악제로 만드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축제의 세계화 내지 국제화는 결코 헛된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성 있는 과제이다. (본 원고는 예술의 전당이 금년 11월에 발간한 「예술의 전당 30년사」(p.265-273)dp 수록된 내용임)